Mnkai Mnkai

이어서

이전 글 에서 언급했지만, 전 80-90년대에 만들어진 네모난 검정색 박스 위에 LED와 버튼이 여러게 달려있고, LCD 화면에 이것저것 정보가 표시되는 감성을 매우 좋아합니다. 그 감성엔 역시 Roland 사운드 캔버스 시리즈가 딱 맞죠.

하지만 이 사운드 캔버스는 의외의 수요가 좀 있어서 오래된 것 치곤 좀 비쌉니다. 저같이 네모난 검정색 박스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지만, 그와는 조금 관련이 없을 것 같아 보이는 반주기 시장에서도 이 모듈은 여전히 수요가 있거든요. 한국 내에서 수요가 그렇게 많진 않지만 이 시절의 사운드 캔버스 기기들은 단종된 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공급은 전혀 없어서 가격이 슬금슬금 올라가고 있습니다. 거기에 이미 존재하는 기기들이 슬슬 고장나고 있다는 것도 하나의 원인이 되겠죠.

그래서 사운드 캔버스 국내 시세가 좀 비싸서 구입하진 못하고 있었습니다만, 최근 안타깝게도 마침내 발을 들여버린 일본 옥션에서는 국내보다는 비교적 저렴한 시세로 판매되고 있었기에 이 기회에 구입해서 하나를 들여오게 되었습니다.

맨날 수 킬로그램의 철 상자를 들여오니 세관에서는 절 아마도 이상한 사람으로 보지 않을까 싶습니다. 저 스스로 보았을 때에도 좀 이상한 사람이 맞는 것 같긴 하지만.

미디를 컴퓨터에서 사용하려고 하면서 생긴 일들

사운드 캔버스 모듈이 처음 나올 때 목표했던 사용 용도를 생각하면1 사운드 캔버스 자체도 분명 컴퓨터 연결을 지원하리라는 것은 잘 알 수 있습니다. 하지만 그 시절 컴퓨터에 외부 기기를 연결할 때 보편적으로 사용하던 인터페이스가 이젠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가장 큰 문제죠.

사운드 캔버스를 컴퓨터에 연결하려고 할 때 그 시절에 사용하던 인터페이스는 시리얼 인터페이스였고, 당연하게도 요즘 나오는 컴퓨터는 더이상 시리얼 인터페이스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. 그렇기 때문에 USB 를 통해 미디 신호를 보내는 컨버터, 그리고 컨버터에서 사운드 모듈에 바로 연결할 미디 케이블이 필요하게 된 것입니다. 마치 예전에 컴퓨터에 미디 장치를 직결하지 못하고 Roland MPU-401 를 거쳐서 연결하는 모양과 조금은 비슷하네요.

전 처음에 이 USB를 통해 실제 미디 신호를 만들어주는 컨버터의 역할이 중요해봤자 얼마나 중요하겠어... 매우 간단한 물건인데... 하는 마음에 최고 싼 제품을 그냥 구입했지만, 이 생각은 물건을 받고 난 다음날에 바로 깨지게 되었습니다.

여러분들은 이 모양의 컨버터를 절대로! 구입하지 않으시길 추천드립니다. 이 제품을 사용하면 사운드 모듈이 처음엔 분명 정상적으로 음악을 재생하는 것 처럼 느껴지겠지만, 묘하게 일부 악기가 제대로 나와야 할 악기가 아닌 피아노로 나오는 것을 처음에 느끼게 될 것입니다.
그리고 나서 음악의 클라이맥스에 도달해 노트가 많아질 때 처리 속도를 못 이기고 소리가 안 나오다가 한번에 몰아서 두두둑 소리를 내면서 도착하고, 그 과정에서 악기를 변경하라는 신호가 일부 깨져서 어느 순간부터는 멜로디를 팀파니가 연주하고 퍼커션 트랙을 피아노가 연주하는 글리치 트랩 리믹스 버전을 들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.

저처럼 돈 낭비를 하지 말고 그냥 처음부터 제대로 된 걸 사세요.


1: 데스크탑 컴퓨터에서 음악을 작곡할 때 쓰이는 용도

미디 재생 프로그램

이 지점까지 왔다면 이미 중고로 구입한 사운드 모듈의 가격보다도 사운드 모듈을 사용하기 위해 필요한 주변 장비의 가격이 더 커진 이상한 현상을 느낄 수 있게 됩니다. 걱정하지 마세요, 아직 하나가 더 남았습니다.

Windows와 Linux의 경우 이 부분은 사실 필요하지 않습니다만, 전 제 개인 데스크탑 용도로 macOS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 부분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. Windows의 경우에는 아직도 Windows Media Player에 미디 음악 재생 기능이 들어가있고, Linux의 경우에는 aplaymidi 를 사용해 큰 무리없이 미디 음악 파일을 바로 재생할 수 있죠.

macOS에도 여전히 미디 관련 지원이 포함되어 있지만 미디 음악 파일을 재생하는 기능이 Quicktime Player 에서 제거되었기 때문에 정작 미디를 재생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사라져버린 것입니다. 물론 전 로직이 있긴 하지만 미디 음악을 들을때마다 로직을 켜긴 좀 그렇죠.

여러가지 선택지가 있을 수 있지만, 전 적당히 간단해 보이고 화면에 적당히 흥미로운 정보들이 많이 나오는 것 같은 MIDIPlayer X 를 구입하게 되었습니다. 꼭 이걸 사지 않더라도 적당한 프로그램을 사용하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. 왠지 Winamp가 그리워지네요.

The moment of truth

음악이 매우 잘 나옵니다. 이제 그 시절 음악을 듣기만 하면 되네요.

여담

확실히 SC-88을 사고 나서 내 인생이 달라졌다.

원래는 고딩때 일진 눈도 못마주치고

쓰레기 아무데나 버리고 침 찍찍 뱉고 했는데,

Roland SC-88VL 오너가 되고나니깐 품위유지 할려고 스스로 노력할려고한다.

방금도 길바닥에 포스틱봉지 버려져있길래 주워서 쓰레기통에 버리고왔다.

학생때는 일진은 커녕 같은 찐따 눈도 못마주쳤는데 이제는 배달음식 주문할때도 큰 소리로 또박또박말하고,

편의점 피시방에서도 알바생이랑 눈마주치기 가능해졋다

아무리 기분 안좋은 일이 생겨도

샤워하면서 혼자 나는 누구?

"Roland SC-88VL 오너"

하면서 웃으니깐 기분도 좋아지네

이래서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말이 나온거같다.

...당연하지만, 농담입니다.

당분간 미디 관련으로는 이 사운드 모듈로 충분히 만족할 것 같습니다. 나중에 무언가를 추가하게 된다면 야마하 MU 시리즈 사운드 모듈 (XG 음원 재생용), 그리고 OPL3 사운드 모듈 정도가 되겠네요. 하지만 전 OPL3 시절의 게임 추억이 있는 나이까지는 아니기 때문에 이정도로 만족합니다. 물론 그 시절 음원도 나름대로의 매력이 충분히 있지만요.

이제 제 MT-80s는 잉여가 되었다는 슬픈 소식입니다. 비싸고 많은 부피를 차지하는 인테리어 소품이 되겠네요. 한 1년정도 뒤에 저보다 잘 쓸 사람에게 처분하는게 좋을지 고민하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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